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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묻고 답하다] 〈1〉불교가 신을 믿지 않는 까닭   2015-08-03 (월) 15:57
무비선   1,481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 당당하게 살라”

[불교, 묻고 답하다] 〈1〉불교가 신을 믿지 않는 까닭   
 
지난해 연말 지상파 방송 3사에선 여느 때와 같이 각종 시상식이 열렸다. 독실한 불자로 알려진 중견 탤런트 김혜옥 씨가 MBC 연기대상 황금연기상을 수상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감사한다”는 수상 소감이 무척 반가웠다.

개신교인이 많은 연예계이고 ‘하나님’ 일색인 공치사가 해마다 마뜩찮은 불자들에겐, 한 송이 꽃과 같은 말이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부처님’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적시한 혜안이 놀랍다.

얼핏 원론적인 인사말 같지만 사실 김 씨는 불교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견제 혹은 반항 심리로 “부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불자 연예인들의 발언을 간혹 듣는다. 불교에 대한 애정은 가상하나, 불교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처님은 당신의 가르침에 의지하라고 했을 뿐, 단 한 번도 당신을 신봉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아난다여, 내가 비구들을 이끈다거나 내가 승가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지 말라. 승가의 어떤 문제에 대해 내가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지 말라.”(조계종 교육원 편찬 <부처님의 생애>)

삶은 결국 자신의 몫…행복도 불행도 ‘셀프’

‘주체적인 깨달음’ 강조하는 유일한 종교

불자가 따라야 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은 부처님의 유훈이자 신행의 핵심을 일러주는 법문이다. 부처님이 노년에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자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제자 아난다가 마지막 설법을 청했다. 이에 부처님은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것을 한문으로 옮긴 글귀가 바로 ‘자등명법등명’이다. 본래 부처님이 사용하던 언어인 빨리어 경전에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이었다고 하는데, 한역하면서 섬을 등불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곧 불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종교다.

“진리를 알지 못해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듯이.” <법구경> 현실은 누구에게나 버겁고 미래는 막막하다. 더구나 죽음이라는 마지막 재앙 앞에서 모든 사람은 쓸쓸하고 비참하다.

그래서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어떤 전능한 존재에게 자기를 의탁하려는 습성을 지닌다. 종교는 인류의 심성에 내재한 원초적인 불안에서 비롯된 문화다. 그리고 어느 종교든지 초월적인 절대자인 신(神)을 설정하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일에 참된 행복이 있다며 예배와 순종을 재우친다.

반면 불교는 신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이며, 믿음의 길이 아니라 지혜의 길이다. 주체적인 깨달음을 구하고 깨달음에 따라 행동할 것을 구하는 종교는 불교뿐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이란 인간의 나약함과 공포심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진리를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밤길을 밝혀달라며 눈에 보이지도 않은 신에게 구걸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등불을 얻어 어둠을 밀어내는 삶이다. 등불은 공(空)과 중도(中道)에 대한 통찰이고, 등불을 밝힐 기름은 수행이다.

세계는 나의 태어남으로 시작되고 나의 눈뜸으로 비로소 열린다. 나의 고통을 누군가 위로할 순 있어도 대신할 순 없다. 삶은 결국 내게 주어진 몫이고, 나만이 견딜 수 있는 업(業)이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되게 마련이다. 행복도 불행도, ‘셀프’다. “문득 부처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남의 보배나 세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증도가(證道歌>

[불교신문30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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