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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출가한 혜민스님을 모시고 옥천사 청련암에서 법회를 합니다.*^^*   2010-07-15 (목)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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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던중

불교를 만나 홀연 출가하신 혜민스님.

그 뒤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햄프셔대학교수로 임용되기까지

미국학생들을 가르치는 30대 젊은 비구스님의 좌충우돌 수행기

청련암에 오시면 스님을 직접 뵙고 그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2010년 7월 29일 목요일 지장재일 저녁 7시

청련암 야단법석에서 혜민스님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청해 듣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셔요.

공부가 무엇인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유학생활은 어떤 것인지

미국 명문대를 두루 거치고 미국 햄프셔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혜민스님께 직접 질문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청련암에 꼭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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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젊은 날의 깨달음

지은이 : 혜민 스님

출판사 : 클리어마인드

하버드대 나오면 모두 성공한 건가요?

2000년 조계종 행자교육원에서 스님이 되기 위해 엄격한 수행을 시작한 행자들의 모습을 'MBC 스페셜'로 담아 '부처님오신 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2009년에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했던 그 스님들의 10년 후의 모습을 담은 '출가, 그 후 10년'을 다시 TV로 방송하게 된다.

혜민 스님은 '출가, 그 후 10년'의 주인공으로 100대 1일 넘는 경쟁을 뚫고 美 동북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햄프셔 대학교에서 정식 교수로 활동 중인 “미국 최초 한국인 스님 교수”이다.

『젊은 날의 깨달음』은 하버드대에서 출가한 혜민 스님이 지난 10년 동안 교계 언론지를 통해 발표한 글들과 최근에 쓴 새로운 글들을 엮은 것이다.

이 책에는 스님이 어려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들, 북경에서 살 때 자전거를 도둑맞고 쓴 이야기, 실연당한 도반을 위로하기 위해 쓴 에세이, 뉴욕 은사 스님 절에서의 이야기 등 승려가 된 후 겪게 된,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있는 스님은 일류 대학만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학력지상주의를 꼬집으면서,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혜민 스님 소개

혜민 스님 학부 때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비교 종교학 석사를 수학하던 중 출가를 결심 2000년 봄에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으면서 조계종 승려가 되었다.

그 후 프린스톤 대학원에서 박사 공부 중 연구차 북경 北京과 오사카 大阪에서 미국과 일본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유학 생활을 하게 된다.

박사 졸업후 2007년부터 미美 동북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햄프셔 대학교에서 정식 교수로 발령을 받아 현재까지 교편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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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의 저자 혜민 스님 인터뷰 | .............불 교 계 소식

선재동자 | 조회 381 | 2010/05/19 11:16:43

영화감독이 되려 미국에 간 청년

'혜민'이란 이름의 꽃이 되어 다가오다

한국 승려 최초로 미국 대학에서 교수가 된

<젊은 날의 깨달음>의 저자 혜민 스님 인터뷰

기사제공 :

혜민 스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신문사에 입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습을 떼고 처음으로 조판을 맡게 되었을 때 혜민 스님은 내가 맡은 지면에 들어가는 <세심청심>이라는 칼럼의 필자였다.

그로부터 몇 년간 스님 원고에 대한 평과 미국의 소식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으며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가끔 미국불교에 관한 취재를 할 때면 스님은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고, 나는 한국의 소식들을 전하거나 스님의 글에 관한 몇 가지 코멘트를 하는 전화나 메일을 주고받았다.

내가 스님에게 했던 코멘트 중 하나는 “스님 맞춤법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직후 미국으로 건너간 스님은 그 사이 한국어 문법이 바뀐 지도 모르고 “하였읍니다”라고 계속 표기를 하고 있었다. 무우가 무가 되었고, 봉숭화가 봉숭아가 되었으며, 강남콩이 강낭콩이 된 사실을 나는 친절하게(?) 전해주었다.

스님과 친구가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스님의 팬이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스님의 첫 번째 독자였던 나는 2주일에 한 번씩 오는 스님의 원고를 읽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젊은 청년 승려가 바라보는 세상은 참으로 진지하고 솔직했으며,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다. 나는 나보다 겨우 1학년 선배인 스님이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너무 부러웠다. 열린 마음을 갖고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스님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자 커다란 채찍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 스님은 프린스턴을 수료하고 중국 칭화대에서 1년의 연구기간을 거쳐 박사논문을 완성했으며, 그 후에는 일본 오사카대에서 1년간의 연구기간을 보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을 오고가는 바쁜 와중에도 스님은 꾸준히 연재를 이어나갔다. 스님의 글은 대부분 청년 유학생, 혹은 젊은 수행자가 유학생활을 통해 겪는 사소한 일상들이었다. 스님은 예리하고도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을 관찰했고,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자문하고 반조하며 그 내용들을 자신의 원고에 담았다.

북경에 가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이야기, 일본 찹쌀모찌 가게에서 시각장애인 점원을 만난 이야기, 티베트 스님과 티베트의 미래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 미국 불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 등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꺼리들을 전해주었다.

스님은 프린스턴대에서 <중국 나한신앙을 연구>한 “우수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곧이어 햄프셔주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한국인 스님으로는 최초로 미국의 정식교수가 된 것이었다.

스님의 연재가 끝난 후에도 스님과 나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가끔 스님이 한국에 들어올 때면 우리는 인사동 언저리에서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얼마 전 스님으로부터 한국에 잠시 들른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스님의 신간 <젊은 날의 깨달음-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이 출간되어 홍보차 입국한다는 소식이었다.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반가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 아름다운 글들이 책으로 묶여져 나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설레었다.

스님이 입국한 바로 다음날 스님과 클리어마인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 사이 살이 쪄서 보조개가 사라졌다”며 짓궂은 첫인사를 전하자, 스님은 결혼선물이라며 면세점에서 산 시계를 건넸다. 그동안 필자와 원고담당으로 만나왔지만 인터뷰어와 기자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우며, 그동안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한 짖궂은 질문을 ‘기습적으로’ 던졌다.

“스님, 연애해 보셨어요?”

“아니, 갑자기 그건 왜…?” 스님이 반문할 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내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면 사회자가 이런 걸 물어볼 껄요. 그러니까 연습한다 생각하시고 한번 이야기 해보세요” 라고 하자 스님은 “예, 연애해봤어요.”라고 말하고는 17살 소년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출가 전이에요? 출가 후에요?”라고 다시 묻자 스님은 “당연히 출가전이지요!”라고 발끈했다.

“스님은 얼굴도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고 성격도 좋아서 인기도 많았을텐데 왜 출가하셨어요? 미국 아가씨들이 스님을 붙잡지 않던가요?”라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스님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러게요.<웃음> 대학 다닐 때 연애를 해봤는데, 저는 연애 감정이 깊어질수록 사랑이라는 것이 종교와 아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칼릴 지브란의 시에 ‘사랑은 사랑만을 충족시킨다’는 구절이 있거든요. 그 대상에 모든 관심이 다 쏠리고, 이기적인 마음은 사라지고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죠. 저는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사랑의 본질과 종교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한 여자에 몰두하는 남자이기 보다는 인간의 본질에 몰두하는 수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그래서 출가를 결심했던 것이지요.”

문득 책에 눈길이 가 책 제목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버드에서 출가라고 것을 넣은 것도 그렇지만, 특히 제목에 깨달음이라는 말을 넣은 이유도 궁금했다.

“사실 저는 하버드라는 타이틀을 제목에 넣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하버드 나온 스님이라는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절충안으로 제가 붙인 ‘젊은 날의 깨달음’ 밑에 부제로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이라는 제목을 달았지요. 제가 깨달음을 제목에 넣은 것은 깨달음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한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은 깨달음들이 쌓여서 커다란 깨달음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죠. 제가 만난 작은 깨우침들을 모아서 책을 냈고, 이 작은 깨달음이 먼 미래에 커다란 깨달음을 향한 초석들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어요.”

스님이 출가를 한 것은 하버드대학원에 다닐 때였다. 스님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직후 미국 버클리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헐리웃을 주름잡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계속해서 관심이 종교에 대해 기울었다고 한다. 이후 종교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마음먹고 하버드대학원으로 갔다. 스님은 이날 처음으로 “하버드로 간 것은 사실 ‘하버드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많아서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는 베트남 유학생 스님의 말에 솔깃해서였다”고 토로했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스님은 베트남 스님의 도움을 받아 하버드대학원을 진학할 수 있었다. 스님은 하버드 재학 시절, 뉴욕 불광선원에서 휘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고, 잠시 한국에 들러 사미계를 받았다. 곧이어 스님은 하버드대학에서 스님을 지도했던 지도교수가 프린스턴대로 가게 되어 프린스턴대학원으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이렇듯 버클리-하버드-프린스턴 등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대학이란 대학은 모두 거쳤으니, 출판사에서 ‘하버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님은 하버드라는 타이틀을 갖다 붙인 것이 여러 가지로 마음 쓰이는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버드에 대해서 엄청난 동경을 갖고 있는데, 사실 하버드는 미국의 좋은 대학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에베레스트만 등반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포기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겠어요. 그런데 에베레스트가 아니더라도 동네 산을 오르더라도 충분히 즐거워하고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잖아요. 제가 사실 하버드가 참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 것은 하버드가 공부벌레들만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책 서문에도 썼지만 하버드에서 만난 친구 중에 존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중국으로 함께 어학연수를 갔던 친구인데, 존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주말이 되면 마을 전체가 에이즈에 감염된 지역을 찾아가서 고아들을 돌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저는 하버드에서 얻은 최고의 가르침이 바로 존을 통해 배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제가 출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존의 가르침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하버드가 입학할 때 성적만 보지 않는 건 아시죠? 하버드는 사회적 실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입학과정부터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우수한 학교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미국 교육의 장점 중의 하나이지, 굳이 하버드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스님은 미국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을 “공부가 학생의 전부라고 가르치지 않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개개인이 가진 개성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교육문화가 있어요. 이게 바로 미국교육이 우수한 이유이죠. 하버드와 프린스턴의 학생들은 한 명 한 명이 범상치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이유는 공부만 잘하는 ‘공부벌레’가 아니라 공부 이외의 ‘딴 짓’에서 나오는 경험을 모두들 한 가지 이상은 꼭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국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 애를 쓰는데, 이것이 다양한 능력과 경험을 쌓는 과정이 아니고 정형화된 몇 가지 자격증 취득을 따기 위한 과정이라는 게 문제라고 봐요.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스님의 신분으로 미국대학의 교수를 하는 것은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스님은 “오히려 한국에서 교수하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스님이라는 신분이 미국보다 훨씬 더 제약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상당히 실력 있는 스님이 한국에서 교수 임용 최종심사까지 갔다가, 나중에 학교 측에서 승려라는 것을 알고 난색을 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학교에서나 학생들이나 모두 제가 승려라는 점을 훨씬 더 좋게 생각해요. 승려가 종교학을 가르치니까, 책 속의 종교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체험한 종교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구요. 그런 측면에서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더 공부하기에도, 가르치기에도 편한 곳이라 할 수 있죠.”

스님은 “어쩌면 교육자의 길과 수행자의 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은사스님이 있어서 그 두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오히려 훨씬 더 중노릇을 더 잘 할 수 있게 됐다”며 “사실 제가 지금까지 승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은사스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했다.

“저희 은사 스님(뉴욕 불광선원 주지 휘광 스님)은 저에게 커다란 나무 같은 분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가 승려로서 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은사 스님 덕분입니다. 제가 햄프셔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도 은사스님 절과 2시간 반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은사 스님은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도 항상 저에게 절의 잡다한 소임들을 맡기십니다. 지금도 매주 주말마다 은사 스님의 절에 갑니다. 절에 가서 중고등학생들도 지도하고 신도들의 고충도 들어주고, 가끔씩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죠. 한번은 한 신도가 이민국으로부터 추방을 당할 지경이 되어서 제가 중앙정부에 편지도 쓰고 관청에도 들러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남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으면서 정작 저는 행복해하고 있더라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드리고 나면 ‘승려, 참 잘 됐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는 한편으로는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의 본분사는 승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사스님의 배려와 지도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스님은 앞으로 “한국의 전통문화, 불교 사상을 미국에 심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또한 커다란 포교의 실천방법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다시 인용했다. 김춘수의 <꽃>은 스님이 아주 좋아하는 시로, 스님의 책에도 등장하는 시이다.

“김춘수의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나오죠. 그런데 미국에는 중국의 Chen도 있고 일본의 Zen도 있는데, 한국의 선은 없어요. 저는 계속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한국의 전통과 가치관, 불교사상을 의미 있는 것으로 전하는 교량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부처님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혜민 스님, 그는 불교계 기자를 하면서 만난 이들 중 가장 큰 영감을 준 이 중의 한 명이다. 나는 스님을 보면서 한국불교에 희망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 희망의 불씨가 미국 대륙에서 꽃피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에 스님이 발간한 책 <젊은 날의 깨달음>은 우리에게 ‘혜민’이라는 이름의 꽃을 소개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스님은 또 다른 이름의 꽃들을 우리에게 선사해줄 것이다. 스님이 건네주는 꽃을 기다리는 일은 항상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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